까닭없는 마음(욥기 2장 3절)

욥이라는 인물은 구약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의 체계를 흔들어 놓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사람이 복을 받는데 세상적인 복도 반드시 받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 구약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인과응보는 결과가 나쁘든 좋든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과응보의 사상은 모든 인류가 가지고 있는 아주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도 그렇고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도 그렇고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정직하면 상을 주고 어린 생명을 보살피면 아주 큰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완전히 그 법칙을 깨뜨린 것입니다. 욥은 까닭 없이 고난을 받은 것이고 그 고난을 받은 것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원인을 찾게 한 것이고 그 원인을 통해서 계속 공격을 받았습니다. 욥의 입장에서 볼 때 까닭 없이 고난에 들어갔는데 욥은 그 고난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저는 ‘까닭 없이’ 라고 하는 것이 욥이 고난을 통과할 수 있는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는데 자기가 건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고 또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까닭 없이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까닭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하니까 까닭 없는 고난 가운데로 들어가서도 그것을 통과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까닭 없이 좋아하는 이 마음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은 계산을 합니다. 그 사람이 선한지 악한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한테 이익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보고 까닭을 찾아서 사람의 관계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냥 까닭 없이 좋아합니다. 물론 까닭 없이 좋아하는 것도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면 찾을 수 있겠지만 설명할 수 없는, 까닭 없이 좋아하고 까닭 없이 쫓아가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형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본능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미국에 있을 때 개를 한 마리 키웠는데 이름이 호피였습니다. 호피가 어렸을 때부터 제가 씻기고 먹이고 다 하고 제 아내는 털 빠진다고 정말 개 취급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사를 하게 되서 주인집 언니가 의사인데 그 언니에게 호피를 줬습니다. 그 때부터 개 팔자가 상팔자가 됐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매일 구박당하다가 갑자기 우리도 먹을 수 없는 고기를 먹고 필요한 수술은 다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희 집에 놀러 왔는데 그 개가 저를 보고는 짖더니 제 아내에게는 꼬리를 쳤습니다. 개도 그 집안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개한테 저는 하인이었습니다. 개한테 강압적으로 그런 생각을 심어준 것이 아닌데 이미 개가 본능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저는 욥이 온갖 고난을 어떻게 겪었을까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믿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온갖 고난과 온갖 수모와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어린아이 같은 마음, 까닭 없이 하나님 앞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그 본능, 하나님이 그렇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바 된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하나님이 좋든 싫든 그냥 발로 차고 때리든 ‘아, 하나님이 나의 삶에 주인이시구나.’ 라고 하는 것을 깨닫고 주인 앞에 갈 수밖에 없는 그런 마음인 것입니다. 

이번에 교황이 오셔서 이제는 카돌릭을 믿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교회가 아닌 성당에 다니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은 좋은 지도자가 나오면 종교가 또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변하는 것이 아니고 주든지 안 주든지 어떻게 하든지 상관없이, 까닭 없이 그냥 하나님 앞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그냥 그렇게 관계를 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이 주신 참된 본능 이것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을 극복했던 욥이 가지고 있는 힘, 까닭 없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까닭 없이 하나님 앞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하는 자기 정체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도 저주 받은 것 같고 저렇게 생각해도 저주 받은 것 같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무 이유도 없지만 나는 하나님 앞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설명이 되지 않는 원인과 결과 속에서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할지라도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라는 찬양처럼 예수께로 가면 그냥 즐거운 것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이라는 것이 ‘그냥’이라는 것입니다. 까닭 없이, 이유도 없이 믿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안에서 이렇게 머물러있기를 원합니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조그만 어떤 이유가 있어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아무 이유도 없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그 모습 그대로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2014.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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