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라 (로마서 16:17-20, 민수기 3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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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사도바울이 로마교회를 향해서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 부탁의 말씀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믿음을 회방하고 또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또 다른 실체, 사탄이라고 하는 존재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단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 악한 영들이 우리 가운데 일하는 것에 대해서 소홀히 대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너무나 쉽게 속고 그 속은 말이 진실인 것처럼 스스로 그것에 대해서 인정하고 동조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분명하게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가끔은 영의 실체인 사단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고 다른 모양으로 올 때 마다 그 모양과 사람을 대적하는 것 때문에 실제적으로 그 악한 영들에게 속을 때가 또한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존재를 모르고 있거나 사단이 쓰고 있는 전략과 전술을 모르고 있거나 또한 사단이 가지고 있는 목적 자체를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사도바울은 특별히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있을 때 마다 사단이 가지고 있는 아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방해전략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17절)’

순리를 역리로 쓰고 역리를 순리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 거스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배운 교훈이 세 가지 있습니다. 믿음에서부터 시작해서 믿음에 이르기까지 라고 하는 그 믿음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첫 번째가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후사가 되었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과 단일을 이루고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시작해서 믿음에 이르기까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라고 하는 이 교훈 앞에 있습니다.

그 교훈 가운데서 살아갈 때 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믿음의 역사와 그 믿음의 신비와 그 믿음의 영원하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인데 그것을 거슬러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 말고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믿음 가지고는 안 되고 믿음 이외에 또 다른 엔터테인먼도 필요한 것이고 심리학도 필요한 것이고 또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한 것이 교회이고 나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 구나(고후 11:4)’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더 잘 받아들이고 더 귀가 솔깃하고 그것이 더 좋은 것처럼 따라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있는데 또 다른 예수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 아닌 또 다른 영이 있습니다. 복음은 복음인데 복음 말고 또 다른 복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서 말하고 있는 또 다른 실체인 사단의 영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1세기 초대교회 때 육체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 마다 적그리스도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가 있는데 그 예수는 우리에게 정신, 생각으로만 오신 예수라는 것입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라는 뜻은 이 역사 속에서 우리의 몸으로 경험되어지는 실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뭔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뭔가 이해가 되지 않는 또 다른 것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육체로 오신 예수그리스도, 몸으로 섬기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대단한 지식을 갖고 있고 예수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다 외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관계 하지 않고 몸이 무너져있고 실제로 사람들과 연합하지 못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사람을 섬기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의 삶에 대해 함께 나누지 않습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그리스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 믿음의 역사가 사실은 눈으로 보여야 되는 것입니다. 실제입니다. 그것이 영으로 오면 온유와 섬김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복음으로 온다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그 모든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 잘 맞춘다는 다른 목사님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왜 다른 예수이고 가짜 영이냐 하면 그 안에 진정한 사랑의 교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맞추느냐 맞추지 못하느냐 헌금을 했느냐 안했느냐 라고 하는 다른 목적 다른 동기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잘맞추는 것을 말하자면 제가 아는 용한 점쟁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귀신도 잘 맞춥니다. 귀신들은 미래는 볼 수 없지만 과거의 패턴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너무나 잘 맞출 수 있습니다. 귀신은 과거의 영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환상을 보고 꿈을 꾸고 비전을 봅니다. 귀신의 영은 과거를 보지만 성령의 영은 앞을 내다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서 소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그 문제를 해결했느냐, 그 사람이 얼마만큼 능력이 있느냐, 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 라고 하는 것을 계속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받았다는 권능이 섬기는 권능이었습니다. 내가 군림하고 내가 무엇인가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 말을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온유와 겸손으로 나누고 베풀고 섬길 수 있는 태도로 바뀐 것이 성령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내가 할 수 없음을 스스로 보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른 복음, 소위 성공의 길, 지름길, 또는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하는 그것을 쫓아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답이 없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니 주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답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문제 속에서 이것인지 저것인지 헷갈릴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의 특징 중에 하나가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도 다른 사람한테 맡깁니다. 점쟁이한테 맡기거나 가끔은 목사님한테 맡기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책임지지 않고 탓을 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시킨 것이기 때문에 도망갈 곳을 찾으며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 마음 안에 진정한 예수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인생에서 실패했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진리의 세계에서는 승리하셨습니다. 내가 지금은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 우리가 주님 안에서 승리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진정한 복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믿음으로 후사가 되었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단일을 이루고 살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지만, 내가 열심히 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인정받기를 원하고 얼마나 또 자신이 깨끗한 사람으로 보여지기를 바라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또 다른 나의 복음입니다. 제 선배목사님이 ‘정영구목사도 안티가 있는 것 같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순간적으로 변명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게다가 옆에 있던 목사님이 ‘목사님 원래 무서워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었던 제 모습에 대해 하루 종일 묵상해 보았습니다. 여전히 저에게도 다른 복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자녀가 되고 믿음으로 후사가 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루어져서 하나님과 단일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보다 조금 더 낫다는 생각, 나는 좀 괜찮은 사람이야 라고 하는 내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다른 복음, 나의 복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가 진정 복음의 사람이었다면 ‘맞습니다, 안티가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께서 저를 목사로 부르셨기 때문에 제가 그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라고 얘기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 두 분 목사님들이 아마도 ‘아멘’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사단이 너무나 우리의 가까이에 있습니다. 어느 순간 나를 나 되게 만들 수밖에 없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있습니다.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17절)’

사단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만이 진정한 나의 구원자이고 그 분이 계시기 때문에 내가 온전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다고 말로는 하고 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영,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이 살피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떠나라고 말합니다. 살피고 떠나서 주님께서 주시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십니다.

살피라는 말이 영어로는 watch out 입니다. 슬쩍 지나가듯이 보는 것이 아니라 집중해서 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예수가 아닌 또 다른 예수를 얘기하고 있고 누가 다른 영을 말하고 있는지 또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를 집중해서 보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늘 깨어있으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어느 순간에 일어섰다할지라도 또 다시 넘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안에서 깨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 앞에서 섰다고 하는 순간에 넘어질 수 있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이 의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피셔야 합니다. 혹시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구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두 번째 떠나라는 말은 동조하지 말고 인정하지 말고 주장하지 말고 내가 그 말씀에 대해서 그것에 대해서 당연하다 맞다고 얘기하지 말고 거절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얘기합니다.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고,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데 열심히 노력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들의 인생 속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를 전하면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떠나라는 것은 그 사람을 떠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관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 말에 그 정신에 동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인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에 대해서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그들을 승리자라고 그들을 성공자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승리가 아니고 성공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떠나라는 말은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너희의 순종함이(19절)’

순종의 영이 우리 가운데 흘러 넘쳐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절대로 거역의 영이 아닙니다. 절대로 거역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서 받은 권세 앞에서 우리가 복종하고 복종의 태도를 가지고 주님 앞에서 순종하듯이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늘 깨어서 떠나고 순종하는 삶으로 살 때만이 온전히 사단의 전략에서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단이 주는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관계는 문안하라는 것인데 사단이 주는 관계는 분쟁하고 거치게 하는 것입니다. 갈라놓고 분열시킵니다. 거짓과 분열이 사단이 가지고 있는 전략입니다. 환상과 망상, 허탄한 말과 거짓말로 사람들을 계속 분열시킵니다. 거룩한 입맞춤을 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단은 자기의 배만 섬깁니다. 정과 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채우려고 합니다. 교활함으로 아첨함으로 악함을 가지고 자기의 배만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 안에서 자신의 뜻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떠나라는 말이 영적인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라는 의미일까요? 교회는 악한 사람들의 소굴입니다. 사도바울이 자신은 죄인 중에 죄인, 죄인 중에 괴수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런 사도바울과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였고 사도바울은 그들을 향해서 거룩한 성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거룩한 성도라고 하는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죄의 괴수와 같이 죄를 어느 순간에 자기 멋대로 쓸 수 있는 존재가 나입니다.

민수기 35장에 나오는 도피성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12족속은 다 자기 땅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레위족속만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마흔 여덟 개의 성에서 나우어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레위지파는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르셔서 땅이 아니라 하나님을 차지하라고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마흔 여덟 개의 성 중에 여섯 개의 도피성을 만들었습니다.

오살죄와 고살죄가 있습니다. 오살죄는 실수로 지은 죄입니다. 그리고 고살죄는 의도적으로 지은 죄입니다. 고살죄를 지은 사람은 이유를 막론하고 사형을 당합니다. 그런데 실수로 다른 사람을 죽였을 때는 특별히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도피성에서 살다가 거룩하게 기름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 죽게 되면 온전히 깨끗함을 받아 나가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성 안에서 오랫동안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도피성을 나가면 피를 보복하는 자에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성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피성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레위인은 왜 하나님께 특별하게 선택받은 사람이 되었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간과합니다. 레위가 좋은 일,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선택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창세기 49장에 가면 야곱이 자기 아들들에게 축복을 해 주는데 레위에게는 저주를 했습니다. ‘너는 그 세겜의 학살을 통해서 너희의 칼은 폭력의 도구가 될 것이다.’ 라고 합니다. 레위는 사실 살인자입니다. 누이를 겁탈한 세겜 사람들을 할례를 받게 해서 다 죽인 사람이 레위입니다. 의도적으로 살인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축복하십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치니라’ 다른 형제들은 보통의 축복만 받아도 살 수 있지만 레위는 하나님이 ‘너는 내 것이야.’ 라고 말할 정도의 축복을 해야지만 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은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48개의 도성에 나뉘어서 살게 된 것입니다.

48개 성에 사는 사람들은 다 살인자의 후손들입니다. 그리고 도망친 사람들도 다 살인자들입니다. 도끼질을 하다가 그 도끼가 날아가서 누군가 맞아서 죽었다면 실수이지만 그것도 살인입니다. 그래서 그런 살인자들이 도피성에 모였습니다. 그 곳의 주인이 바로 레위족속, 살인자들입니다. 도피성은 살인자의 커뮤니티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의 피로 말미암아 속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고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그들을 의인이라고 부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똑같습니다. 우리도 도피성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레위족속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똑같이 살인자의 후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우리가 대제사장 앞에서 죄를 기억하면서 대제사장의 속죄를 기다리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살인을 하고 또 우리에게 옵니다. 그 사람도 살인자입니다. 세상에서 무수하게 살인을 하고 온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를 내 형제로 받아들이고 그가 하나님 앞에 구원받아 해방이 될 때까지 품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떠나라는 말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단이 가지고 있는 전략, 사단의 의도에서 떠나라는 의미이고 또 하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스스로의 정결함과 스스로의 거룩함으로부터도 떠나라는 것입니다. 사단의 전략에 너무나 쉽게 빠질 수밖에 없는 내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주님 앞에서 깨어서 사단의 전략을 이겨야 하지만 사단의 전략에 물든 사람들 앞에서 그것이 아니라고 함께 중보기도해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손가락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단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레위인의 저주 앞에서 오살죄의 피란처가 되었던 도피성 앞에서 대제사장의 속죄를 기다리면서 살피고 떠나고 순종하는 삶으로 살아내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단의 기도>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이 있다면
이 시간 육체로 오신 예수그리스도
온유와 겸손의 인격으로 오신 성령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우리의 해방자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위탁하는 삶이
우리들의 진정한 삶이라고 하는 복음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서
결단의 기도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내가 다른 예수 구하지 않고
다른 영을 구하고 살지 않고
다른 복음을 찾아서 살지 않겠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 믿음의 역사가
오늘 우리가 사단의 전략도 이겨낼 수 있도록
나에게 믿음을 허락하여주시옵소서.

2014.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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