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말씀 2. 3

말씀
작성자
yoo eunjoo
작성일
2016-03-17 02:53
조회
904
떠다니는 말씀을 내가 덥석 잡는 아멘의 안테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적용이 제일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적용을 잘 못합니다. 적용을 잘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자기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뭘 하더라도 망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라는 말씀을 들으면 자기가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 행복합니다. 좋은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멘하고 신앙화한 그 말씀을 적용하고 살아야 합니다.

요셉이 처음으로 애굽에 가서 정착을 한 사람인데 그 뒤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곳에서 살다보니까 나중에 노예가 되어서 출애굽 사건이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잘 읽어보면 상처가 엄청나게 많을 수밖에 없는 사람인데 상처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요셉이 가지고 있던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5장에 가면 요셉이 원수 같은 형들을 만났는데 분노하지도 용서하지도 않고 그저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중략(요셉의 신앙:적용점)-----------------------

어떤 적용을 해야 하는지는 공동체에서 확인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 보다 남들이 아는 내 모습이 더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컨설팅을 받고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 때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편 만들기를 해야 합니다. 저는 교인들끼리 돈거래 하라고 이야기합니다. 빌려 주는 사람은 받을 생각 하지 말고 주고 빌리는 사람은 반드시 갚겠다고 생각하고 빌리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느 지역에 가든 유대인들끼리 똘똘 뭉쳐서 공동체를 이룹니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10%를 공동체에 내놓습니다. 전수 받은 사람은 똑같이 다른 사람에게 성공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또 공동체에 내놓습니다. 저는 늘 저희 교회에서 한 두 사람이 대박이 나기를 바랍니다. 다 성공할 필요 없습니다. 성공한 그 사람이 공동체를 먹여 살리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상호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습니다. 같은 수준의 사람끼리 편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보통 끼리끼리 놀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끼리끼리 놀 수밖에 없습니다. 초등학교 아이 엄마들 보면 다 끼리끼리 모입니다. 생각하는 수준이 비슷한 것입니다. 엄마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아이가 1학년이면 그 수준의 사고를 하고 비슷한 사람들하고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생명의 공동체 안에서 나에게 맡겨진 생명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내가 책임지고 있는 것입니다. 상호의존 하는 사람들과 같이 그 사람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편을 만드는 이유가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이 고대에 자기 조카를 구하기 위해서 집에서 길리우고 연습한 자 318명을 데리고 전쟁을 합니다. 집에서 길리우고 연습한 자가 318명이나 되려면 경제규모가 어마어마하게 되어야 합니다. 최초의 고아원원장이 아브라함이었을 것이라고 제가 늘 얘기합니다. 그리고 최초로 밤에 전쟁을 했던 것이 아브라함입니다. 롯이 잡혀갔을 때 밤에 전쟁을 했습니다. 밤에 전쟁을 하려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누가 우리 편인지 적인지를 구별해야 합니다. 318명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아서 밤에 전쟁을 해도 아군과 적군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편이라는 것은 같이 목숨 걸고 밤에도 같이 싸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편을 만드는 이유가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롯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 갈등을 보고 있는 태도가 있을 뿐입니다. 태도를 다르게 가져야하는데 원수가 아니라 나를 돕는 배필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한계가 있고 오류가 있습니다. 한계는 초월하고 살아야 하고 오류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오류는 고치면 되는 것이고 한계는 수준으로 인정하고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도 오류인지 한계인지 봐야 합니다. 제가 사람들 가출시키기 전문상담원입니다. 어떤 자매가 교회에서는 너무 행복한데 집에만 가면 엄마가 쌍욕을 해서 도저히 힘들어서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집을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 자매가 34세니까 사실은 가출도 아닙니다. 집을 나오고 나서 오히려 엄마하고 관계가 좋아졌습니다. 그 때 너무 결정을 잘 한 것 같다고 지금도 연락이 가끔 옵니다.

집 나오세요, 헤어지세요, 망하세요, 이런 얘기를 잘 하는데 그것이 오류를 바로 잡는 길이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엄마하고 관계를 하려면 반드시 그 공간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류였던 것입니다. 그럴 때는 그 공간에서 벗어나면 또 다른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저히 안 되는 한계상황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사실은 한계와 오류를 뛰어넘으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없는 것입니다. 생명이기 때문에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라면 안 된다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없다고 하게 됩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와서 성경공부를 하고나니까 점을 봐야 되는지 안 봐야 되는지 심각하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몇 개월 더 성경공부를 하시더니 점을 보는 것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만 보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본다면 점을 보지 말라고 절대로 보지 말라고 미신이라고 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그게 중요하다고 잡혀있다면 그 자체를 인정해 줘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방식을 보는 것입니다. 내가 보는 수준은 그 장소를 떠나는 것이 맞는데 죽었다 깨도 못 떠나겠다고 하면 떠날 수가 없습니다. 종교성에 빠지면 ‘이거야.’ 라고 강조해서 사람을 죽일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오류는 고쳐야 하고 한계는 기다려주고 초월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됩니다.

사회에 여덟 가지 영역들이 있는데 정치, 경제, 과학, 교육, 언론, 가정, 종교, 예술의 영역 안에서의 자기의 수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치영역에서는 굉장히 높은 수준에 있는 사람이 종교의 영역에서는 굉장히 수준이 낮을 수가 있습니다. 편차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질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저 사람 좀 알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는데 잘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