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신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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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서, 2서, 3서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교제’입니다. In Church,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공동체를 교회공동체라고 말합니다. 요한 1서는 코이노니아를 이야기합니다. 코이노니아라고 하는 이 교제를 어떻게 잘 이룰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하는 것이 주제입니다. 내가 백조인데 내 몸이 익숙해진 오리의 행태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느냐 하면 교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조끼리 모여서 살라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는 백조의 모임입니다. 믿는 자와 교제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주님을 쫓았습니다. 제자가 예수님한테 올 때는 다 버려두고 오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을 다 끊어버리고 주님 앞에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보내심 받고 내어주는 삶을 살기 위해서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자와 사도는 다릅니다. 사도도 교회공동체에서 교제를 해야 합니다.

제가 교인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지고 볶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잘 들여다보면 거의 아침드라마 수준입니다. 아침드라마를 보면 아줌마들이 왜 싸우느냐 하면 그 남자 내 남자라고 싸우는 것입니다. 교회도 똑같습니다. 목사님 내 편이라고 하면서 싸우는 것입니다. 저희 교인 중에 청소를 너무 열심히 하는 분이 있었는데 청소하면서 인간들이 청소를 안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예배는 잘 빠집니다. 그러니까 주일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니는 사람은 인간이 주일도 잘 안 지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교회에는 다 짐승만 다닌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단지 오리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교제해야 합니다. 교제는 처음에 신뢰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신뢰하면 상대를 존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존중하기 시작하면 진짜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해부터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도대체 말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고 행동하는 것이 이해가 안 돼서 관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해는 맨 나중에 하는 것입니다. 다 들어보고 생각하고 나니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그 분의 상처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뢰를 맨 마지막에 하려고 합니다. 자신이 신뢰할 만한 것들을 보여줘야 신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신뢰를 달라고만 하는 사람은 신뢰하지 못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못 믿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다 주지 않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제가 늘 그 사람을 환대해 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한 마디 말을 섞지도 않았는데 얼굴만 봐도 싫은 사람 있습니다. 이것을 깨야 합니다. 그것이 다 오리가 가지고 있는 습관입니다. 오리가 가진 습관들이 늘 우리한테 있는 것입니다. 비둘기 같은 성령이 내게 임하셔야 온유와 겸손으로 다 환대해 줄 수 있습니다.

요한 1서, 2서, 3서가 사실은 교제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말씀입니다. 물 보다 진한 것이 피이고 피 보다 진한 것이 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적인 관계를 잘 못합니다. 혈연, 지연, 학연에 매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관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생명관계는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나에게도 그 사람 속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만찬을 함께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내 피와 그의 피가 섞였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이것은 당신을 위해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라고 선언하는 것은 이제는 내 피가 끓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살아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갖고 있는 영적인 생명관계입니다. 이것만 알고 있어도 우리가 교회 안에서 누가 싫고 누가 밉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소주 먹으면 다 용서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먹어도 원수는 원수입니다. 용서가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물 위를 걸으면 그것이 자연입니다. 누군가가 물에 빠져 죽었다면 그것이 기적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물에 빠져 죽는다면 그것이 자연이고 누군가가 물 위를 걸으면 그것이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연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한 형제인 것을 알고 교제를 나누면 그냥 생명관계가 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나니까 그것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 기적이 계속 반복되면 자연이 됩니다. 제가 출판하고 싶은 책 제목 두 번째는 ‘자연스럽게 살아라.’입니다. 맨날 기적만 바라고 맨날 벼락이 떨어지기를 간구하고 살면 안 됩니다. 맨날 벼락이 떨어진다면 그것이 자연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상이 아닙니다.

생명관계를 하면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라고 하는 ‘주’를 먹으면 용서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자와 어린 양이 뛰놉니다. 독사가 어린 아이와 같이 뒹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사야가 보고 있는 하나님의 공동체의 환상입니다. 그런데 사자가 맨날 양 찾아서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목자 때문에 못 잡아먹는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201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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