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장 2

사람이 T(time)시간에 따라서, O(occasion) 경우에 따라서 또 P(place) 장소에 따라서 입는 옷과 하는 행동이 달라지는 것처럼 전는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T.O.P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T.O.P가 분명하면 힘을 빼지 않습니다. 이것이 경기하는 자의 법입니다. 다른 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습니다. 수도사들이 얘기하는 단순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목표, 푯대가 분명하면 나머지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가 지적한 ‘7대 사회악’(Seven Social Sins) 가운데 첫째인 ‘원칙 없는 정치’이다. 간디는 1925년 창간한 잡지 ‘젊은 인도’에서 도덕성 없는 상거래 행위, 노동이 결여된 부, 인격 없는 교육, 인간성 사라진 과학, 양심 없는 쾌락, 희생 없는 신앙 등을 묶어 아직 국가 정체성을 갖추지 못한 인도가 피해야 할 7가지 악을 꼽았다. 

사람들이 단순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명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지자로 가는 것이고 허공에다 주먹질 하는 것입니다. 배워도 그것이 지혜로 나타나지 않고 교만으로 나타나고 배움의 허기가 채워지지 않습니다. 목적이 없는 배움은 배움 자체로만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처소를 모르고 계속 다른 것에 관심을 두다보니까 뱅뱅 돕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삶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전부 목사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목사 보다는 신학교 가서 교수하면 잘할 것 같다고들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이 정말 듣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서른다섯 살 때 까지 제가 잘 하는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 장인어른은 학교를 세 개나 세우시고 성남에서 제일 큰 교회 목회를 하신 분이었기 때문에 제 아내는 아버지하고 제가 게임이 안 된다고 지금도 얘기합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제 아내가 보기에는 제가 없어도 너무 없는, 정말 아무것도 잘 하는 것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도 잘하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야했습니다. 제가 제 자리를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제 삶을 뒤돌아보니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성경공부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가서도 열심히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성경공부’라는 자리를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동권 선배들이 전부 농촌에 가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고 해서 저도 늘 농촌목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까 제가 농촌에 가서 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머리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정말 제 자신을 몰랐습니다. 살다보니 도시가 저에게 맞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알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서른다섯 살 되어서야 제 자리가 어디인지를 찾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 주신 일, 주신 사람에 대해서도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주시지 않은 사람을 사랑할 필요가 없고 또 아무 노력 하지 않아도 주실 사람은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진리를 말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에 내가 맞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유로워졌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떠날 사람 떠나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한테 주신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람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나에게 주신 사람은 육신으로 주신 가족일 수 있습니다. 이래나 저래나 떠날 수 없는 사람이 나에게 주신 사람입니다. 주신 사람에 대해서 내가 분명하게 알면 이 사람을 하나님이 주신 사람이라고 대우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 사람이 원수라면 고통스러워하고 싸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순간에 새로운 것이 보입니다.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코를 파는 사람이 정말 싫은데 그 사람이 내 아들이라면 내 아들이기 때문에 코를 파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죽을 정도로 싫지는 않습니다. 코 파는 행위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먼저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내 아들이라면 이해도하고 용서할 수도 있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 이루었도다.’ 는 평생에 한 번 하는 말이 아니라 매일매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 내 눈으로 본 사람은 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람이라고 대우하는 것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환대해 주고 친한 사람은 친밀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끔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 속으로 기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잘 모르지만 오늘 나에게 맡겨주신 사람으로 환대해 주고 축복해 주고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주신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인생에 모토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매일매일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루치의 말씀, 1년 치의 말씀, 평생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내가 다 이루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에 주신 말씀이 있고 일에 대해 주신 말씀이 있고 사역을 할 때 주신 말씀도 있습니다.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저에게 평생에 주신 말씀은 시편 46편 10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너희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올해 저에게 주신 저희교회의 1년치 말씀은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는 말씀입니다. 

CBS 라디오 방송에서 어떤 성인이 ‘균형감각을 잘 지켜라.’ 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는 균형이 아니라 진리를 가지고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진리일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다 아니라고 해도 진리입니다. 저는 모든 문제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갈등의 문제든, 어떤 사건의 문제든 그 안에 진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것이지 균형을 통해서, 메니지먼트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리가 말씀입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거룩함을 지키는 도구가 진리인데 모든 사건과 모든 상황과 모든 사람 속에는 반드시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어떤 때는 균형이 안 잡혀있는 것처럼, 종교망상에 빠져있는 것처럼 미친 사람 짓을 하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맞다고 해야 되는 것이 진리입니다. 

말씀이 위경에서 나를 건져낸다는 말에서 ‘위경’은 거짓된 가치입니다. 그 거짓된 가치를 이길 수 있는 것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또 말씀이 등불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문제 속에서 답이 없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비춰줄 수 있는 것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46편 10절은 제 인생을 180도 바꾸게 한 말씀입니다. 정말 죽을 것 같은 밑바닥에 서 있을 때 그 밑바닥에서 이 말씀이 저를 일으켜 세우고 저를 다시 보게 했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일이 무엇일까 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창세기에서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라.’ 고 하셨고 마태복음 끝에 보면 ‘가서 제자 삼으라.’ 고 얘기하신 일반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런데 어디에 서 있어야 되는가? 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비젼찾기, 소명찾기 라고 표현하는데 주신 일을 할 때 일은 결국 사람입니다. 우리가 일을 할 때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과 일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을 할 때 방법을 찾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이 12제자를 세우는 일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서 생명을 구하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셨습니다. 큰 틀에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사람에게 관심을 갖으시고 사람과 일을 하라고 하시느냐 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셔서 부리는 영과 자연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오고 나니까 거짓 영이 위로 올라가서 자연에 환경에 눌리기 시작해서 그 사람이 만든 신이라고 하는 하나님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만든 것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역리가 되고 역리가 진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바꾸실 때 사람을 세우십니다. 이것이 로마서의 관점입니다. 사람이 바로 서 있으면 창조주를 기억하고 그 사람이 영과 자연을 다스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관심 있으신 것입니다. 

자연을 환경을 잘 조성하면 사람이 믿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람은 가장 완벽한 공간인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었습니다.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우주를 변화시키는 모든 것의 핵심은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을 변화시켜서 질서를 잡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사람을 남기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심판 때에 계산하실 텐데 그 계산이 내가 얼마나 거룩하게 살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얼마나 세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맡겨진 일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사람을 남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주제는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그것을 사랑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먹고 입고 마실 것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보험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남기는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사람은 성경공부를 하고 어떤 사람은 좋은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2014.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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