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7장 4-8절 새벽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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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7장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새로운 이름을 받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12장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서 약속에 따라서 복의 근원이 된 사람입니다.

그 약속은 누가 뭐라고 해도 빼앗기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건, 어떤 상황, 어떤 사람이 온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빼앗기지 않고 절대로 변하지 않는 은혜를 받은 것이 아브라함이었습니다.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또 어떤 사건을 만나든 그 안에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유대인들, 이스라엘사람들은 바로 이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원복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원복, 복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이 아브라함 자신만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 복을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복에는 책임이 있고 그 복에는 반드시 또 다른 생명을 낳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4절)’

아브람과 아브라함의 차이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어떤 상황에든지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다른 생명을 낳게 하기 위해서 또 다른 생명을 품는 존재가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유대민족,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권, 선민의 사상만 가지고 있었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을 섬기는 제사장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아버지의 신앙으로 자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드디어 다른 생명을 품을 수 있는 다른 생명을 낳을 수 있는 아버지의 신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또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유 없이 까닭도 없이 선택받아서 그것을 누리기만 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이룸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룸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는, 내가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또한 생명의 시작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타락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지 못하는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으로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안에서 아브라함으로 자라나야 되는 이유는 하나님은 생명을 품고 생명을 낳고 생명을 보존하는 목적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으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 살아냄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대신 지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또 다른 생명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라난다는 것은 바로 이름이 바뀌는 역사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그 생명이 이제는 또 다른 생명을 낳을 수 있는 아버지의 신앙,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믿음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 안에서 이 말씀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서 하나님 안에서 이름이 바뀌는 아니 믿음이 성장해서 다른 생명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부르셨고
이제는 생명을 품고 생명을 낳을 수 있는
하나님의 존재가 되게 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날마다 주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의 심령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맡깁니다.
맡기는 삶이 하나님 앞에 뜻이 되고
하나님 앞에 이름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함께하여 주실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2014.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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