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장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2절)’ 

혼인잔치를 베푼 임금과 같은 것이 천국이라고 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얘기한다고 했습니다. 14절이 결론이 되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14절)’ 

혼인잔치를 베푸는 임금의 마음이 있습니다. 

첫 번째 많은 사람이 참석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주기를 바랍니다.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선물도 있을 것이고 예식이기 때문에 예복도 준비해야 합니다. 반바지 입고 슬리퍼 신고서 예식에 참여하면 안 좋아할 것입니다. T(time), O(occasionally), P(place) 시간과 상황의 때와 장소, 이 세 가지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임금이 원하는 것도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이고 또 그 구원의 기본을 가지고 들어오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초청받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밭에 가고 사업하러 가느라 바빠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초청한 종을 죽였습니다. 죽일 만큼 오기 싫었던 것입니다. 초청받은 사람이 임금의 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임금이 적도, 원수도 잔치에 초청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잔치에 오기를 바란다면 사돈의 팔촌, 한 번도 연락 안했던 친구들, 빚쟁이, 누구한테든 다 연락할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결혼식이라는 것은 엄청난 인생의 전환점입니다. 그래서 부모라면 가장 축복된 날로 만들어주고 싶은 것입니다. 원수에게도 축복 받기를 바랄 것입니다. 부모에게 원수가 있는데 자식에게 그 원수를 대를 이어 넘겨주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원수는 자신의 대에서 끝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원수조차도 내 아들은 축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의 나라에도 초청장을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가 종을 잡아서 죽였습니다. 보통 사신을 안 죽이는데 죽였다는 얘기는 전쟁을 하자는 얘기입니다. 6절은 화친을 요구한 것인데 7절에 보니까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초청을 하지 않았어도 참석하기를 바라는 것이 임금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초청을 했는데도 바쁘다고 합니다. 그리고 화친을 요구한 부모의 입장은 원수에게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그런데 종을 죽였습니다. 9절에 보면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부릅니다. 아들에게 최고의 잔치를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 임금의 마음입니다. 

참석한 사람도 예복을 준비하지 않아서 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길거리에서 초청 받은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인데 당연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바빠서 못 간 사람들은 충분한 핑계거리가 됩니다. 그리고 길에서 갑자기 초청 받은 사람들도 예복을 입지 못한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둘 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13절)’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서 나타나는 지옥을 의미하는 숙어입니다. 그들은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14절)’ 

천국은 핑계도 안 되고 반드시 들어가야 되는 것이고 반드시 빛의 옷을 입고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복은 흰옷입니다. 네거리에서 초청 받아서 간 사람들은 아무도 예복을 입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시간과 상황과 장소가 어디인지 물어봐야 합니다. 장례식이면 검은 옷 입고 가고 축구하러 가는 거면 운동복 입고 가야 합니다. 묻고 거기에 맞는 옷을 준비해서 입고 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청함을 받았는데 선택을 받은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가기 때문입니다. 무턱대고 가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한 개념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믿으면 천국 간다고 얘기하는데 믿는다는 것이 초청을 받아서 어떻게 가야 되는 것인가 하는 천국의 삶에 대한 준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의 삶의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장사하고 밭에 가고 다 먹고 입는 것에 꽉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원수와 같이 편견, 선입견에 잡혀 있습니다. 게다가 언제인지 장소가 어디인지 뭘 하는 곳인지 묻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다 핑계대고 삽니다. 

천국은 먹을 것, 입을 것, 편견, 선입견, 묻지 않는 것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라고 하는 약이 있는데 이 약은 만병통치약입니다. 그런데 모든 병자가 낫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먹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먹기만 하면 약효는 100%입니다. 천국은 100% 원수에게도 열려있습니다. 천국에 가고 안 가는 것은 자기가 선택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은 다 열려있는 것입니다. 사단에게도 열려있습니다. 마귀에게도 열려있습니다. 가롯유다에게도 3년 동안 열려있었습니다. 

천국에 초청을 받아서 참석한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석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복을 입었느냐 안 입었느냐의 단계가 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번째 구원입니다. 참석하는 것만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보통 천국에 갔다고 하는 것은 첫 번째 단계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갔습니다. 갔는데 어떤 사람은 벌거벗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서의 삶은 또 다른 차원인 것인데 마태복음은 이 차원을 더 중요시 여기는 것입니다. 예복을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예수를 믿었는데 어떻게 믿어야 되는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무엇을 하고 살아야 되는지 이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에 있는 T.O.P 입니다. 천국의 매뉴얼로 살아야 되는데 천국의 매뉴얼과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살다보니까 옆에 있던 강도처럼 인생은 강도의 삶을 살고 예수를 보고서 자신이 잘못 살았다고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잔치에 참석은 했는데 그런데 하나님 앞에 가서 드러낼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강도짓 한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 하나님이 주신 일, 하나님이 주신 사람을 가지고 살아낸 것입니다. 그것이 예복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복을 갖추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단들이 얘기하는 14만 4천 명이 어떤 의미냐 하면 이단들은 자기들의 믿음의 행위가 예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찾아내는 것이고 그것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부터 22절은 하나님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23절부터 33절은 하나님의 나라는 새로운 존재로 본질이 변화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화장을 해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 예수님이 부활의 논쟁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부활 때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30절)’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아닙니다. 천사는 영의 존재이기만 하고 사람은 영, 육의 관계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부활체라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로라(32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한테 죽은 존재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산 자로 우리 가운데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존재로의 본질의 변화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34절부터 46절까지는 결국에는 천국의 법은 사랑의 법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42절)’ 

다윗이 조상이 되고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더 높은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리스도한테 ‘주인님, 주여.’ 이렇게 불렀습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45절)’ 

자손의 관계나 인간의 관계를 다 떠나있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자녀와 아들과 딸들이 다 아버지가 아니고 아들과 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가치 안에서는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니고 아들과 딸도 아들과 딸이 아닙니다. 내 아버지는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가치의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In Christ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버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과 딸입니다. 내 아들 내 딸이 천국에 가면 내 아들, 내 딸이 아닙니다. 그 아이들도 개인의 인생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너와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고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리아에게 ‘여자여.’ 라고 얘기하셨는데 예수님의 입장에서 마리아를 보고 있는 하나님 앞에서의 어머니입니다. 호로자식인 것입니다. 그러나 또 그 안에서 또 다른 관계를 보는 것입니다. 관계도 예수그리스도를 통과한 관계로 보지 않으면 맨날 그 관계 속에 잡혀있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도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천국을 향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나그네입니다. 그런데 이 나그네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방랑자가 아닙니다. 이 나그네는 천국을 향해서 가는 나그네입니다. 본향을 향해서 가는 나그네입니다. 여행의 정확한 목적지가 있는 것입니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나그네가 아니라 정확한 지점이 있는 것이고 모르는 곳을 여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고향과 본향은 다릅니다. 제 고향은 충북 음성입니다. 그리고 또 제 고향은 구로동입니다. 고향은 오래 살았던 곳입니다. 오랜 시간 특별히 어린 시절 살았던 곳입니다. 옛날에는 출생한 그 곳에서 대부분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출생지와 고향이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다릅니다. 그리고 본향은 다시 돌아갈 곳입니다. 고향이 본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곳이 본향이 될 수는 없습니다. 본향은 돌아갈 곳이면서 나의 정체성을 찾게 해 준 곳입니다. 

제가 고OO승재 권사님이랑 초등학교 중학교 때 다녔던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본향교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그 교회에 오랫동안 있었는데도 본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본향교회는 고1 때부터 5년 동안 다녔던 성광감리교회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기본을 그곳에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다녔던 고향교회는 가리봉 중앙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멋모르고 어렸을 때 놀았던 교회입니다. 그런데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아야 되는지 내가 신앙을 어떻게 가져야되는지를 씨름하고 했던 곳이 본향입니다. 

우리는 본향, 천국을 향해서 가는 사람들인데 하늘에서 왔습니다. 나의 정체성이 하늘에 있습니다. 하늘이 본향입니다. 에베소서에 있는 표현을 보면 시민권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외국에 나가본 사람은 시민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압니다. 영주권자냐, 시민권자냐, 불법체류자냐가 어마어마하게 다릅니다. 학생비자는 얼마나 불편한지 모릅니다. 밖에 나가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불법체류자는 그 곳에서 살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시민권자는 다 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시민권자인데 외국인들이 와서 우리나라에서 살려고 우리나라 시민권을 따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무나 안 받아주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시민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꾸 여기에다가 영원한 집을 지으려고 하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뭔가 해보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영주권이 있는 사람입니다. 영주권자는 그 곳에서 살 수는 있는데 시민권자 만큼의 권리는 없습니다. 영주권자는 투표권도 없습니다. 공직에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시민권자 처럼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시민권자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영주권자이고 천국의 시민권자입니다. 신분이 다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시민권자로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살면 안 됩니다. 잔치 집에 갔는데 옷을 제대로 입지 않은 사람들은 불법체류자들입니다. 그래서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는 것이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체류’ 머무를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시민권자이고 이 세상의 영주권자이고 지옥의 불법체류자입니다. 그런데 지옥의 시민권자 처럼 살고 이 세상의 시민권자 처럼 살려고 하고 천국에 가서는 영주권자로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2014.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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