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장 1

23장에는 일곱 가지의 화가 나와 있습니다. 화는 저주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저주 속에 하나님 앞에서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과 저주를 주시는데 축복은 있는 그대로 받고 저주는 그 저주 속에 숨겨진 뜻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공의로우십니다. 공의롭다는 말은 반드시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고 선에 대해서는 상급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죄의 심판은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공의롭다는 말은 그냥 ‘너 의롭다.’ 라고 말로 하신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그 공의로움을 이루시기 위해서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가지불 하신 것에 대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 저주도 주님이 짊어지신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죄든 누구의 죄든 그 모든 죄를 주님이 짊어지고 가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역이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의 문제는 끝난 것인데 이루지 못하는 선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급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엄밀히 따지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저주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저주를 나한테 퍼붓는다고 할지라도 그 저주는 내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저한테 뭐가 부족하고, 뭐가 부족하고, 뭐가 부족하다고 얘기할 때 그 부족함이 나의 삶에 절망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그 모든 저주를 주님이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실망은 할 수 있습니다. ‘그래, 내가 그랬었구나.’ 이렇게 할 수는 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회개가 있고 오히려 심판에 이르는 회개가 있습니다. 회개가 좋은 것인데 어떤 회개는 구원에 이르고 어떤 회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내 저주를 예수그리스도가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에 내가 이루는 삶으로 살아야 되는 것이구나.’ 라는 결단, 미래적 영성의 회개입니다. 내가 과거에 하지 못했던 것, 과거적 영성의 회개는 맨날 그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걸, 내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수많은 실수와 수많은 잘못된 결정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우리 삶입니다. 그것이 과거적 영성에 사로잡히면 모든 사람이 다 우울함에 빠지고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판에 이르는 회개입니다. 이 사람은 맨날 과거에 사는 것입니다. 현재도 과거고, 미래도 과거니까 현재를 사는데도 과거에 메여있기 때문에 나중에 미래에 가서 또 그 현재를 과거로 보는 것입니다. 오늘도 과거에 메여서 사는 것입니다. ~~할걸, ~~했으면 더 좋았을 걸 맨날 그 생각만 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에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책임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인간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는 반드시 예수님을 통해서만 해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을 보고 있다면 이루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사셨으니까 어떻게 선을 이루며 살 것인가?’ 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는 사람에게는 엄밀히 따지면 저주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죄로부터 온 것인가?’ 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죄든, 조상의 죄든 다 없는 것입니다.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예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저주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 저주의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돌아서서 이루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축복은 내가 그렇게 이룬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축복을 받을 때 마다 ‘감사합니다,’ 하고 받고, 저주할 때 마다 ‘회개합니다.’ 하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저희 집 첫째인 딸은 절대로 잘못했다는 말을 안 합니다. 그런데 둘째인 아들은 조금만 인상을 써도 ‘아빠, 죄송해요.’ 라고 말해서 안아주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제가 옛날에 제 딸처럼 했던 것 같습니다. 매를 부르는 아이와 잘못을 했는데도 용서가 되는 아이가 있습니다. 내가 저주를 받았을 때 회개하고 끝내는 것입니다. 그냥 돌아서면 되는 것입니다. 미래적 영성으로 ‘내가 이루겠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넘어졌는데 왜 넘어졌는지 내가 왜 이런 꼴이 되었는지 생각하다가 넘어진 곳에 아예 살림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벌떡 일어나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나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 예수님 없이는 나는 늘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날마다 내가 주님을 바라보면서 나아가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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