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O.T 1

성경은 글로 쓰였기 때문에 글이 가지고 있는 주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글은 반드시 그 글을 쓴 의도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내용은 변하지 않는 진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격언이나 속담이 모든 인류가 경험한 것들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내 인생의 어려움이 있을 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말을 새김질 한다면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되는 것입니다. 격언과 속담처럼 성경도 진리를 추구하고 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형식은 글로 되어 있지만 그 속에 최고의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우리한테 있어야 되는 것이고 믿음이라는 말은 종교적인 뜻이 아니라 진리가 무엇일까 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생명을 어떻게 가져야 되는지가 진리에 담겨 있고 진리는 늘 영원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주제는 모두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반대되는 것이 죽음,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것입니다. 늘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관계를 통해서 무엇인가 하려고 하지만 나중에는 죽음, 끝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다는 말은 반드시 영원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는 것입니다.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는 사람들과 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영원한 생명을 꿈꾸면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종교에는 이렇게 사람을 바라보는 두 가지의 관점이 있습니다. 어떤 체계와 윤리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고등종교가 가지고 있는 특징은 영원성입니다. 불교도 윤회의 인생을 끊어버리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순환을 끊고 하나의 완성체로 남는 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불교는 불교의 방식대로 하는 것이고 기독교는 기독교의 방식대로 풀어내는 것입니다. 

결국 종교성이라고 하는 것은 종교적 행위를 했느냐 안했느냐 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 보다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입니다.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생명에 대한 영원성을 가지고 추구하는 삶이 진리를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글이라고 하는 형식은 있지만 그 글 자체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할 수 있는 길로 어떻게 갈 것인가를 계속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제와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이것은 믿음의 눈과 믿음의 귀와 믿음의 입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의 눈, 믿음의 귀, 믿음의 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자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내가 무너져 있거나 내가 독립이 되어있지 않으면 사실 그 소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별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속 보여주시고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계속 시험합니다. 계속 진짜냐고 묻습니다. 결국 인생 말까지도 그것이 진짜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 자존감, 자기 정체성이 무너져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가르쳐줘도 그것이 진리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라고 얘기하시고 진주를 돼지한테 주지 말라고 합니다. 진주가 먹을 것인데 돼지는 먹을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한 가지를 더 모르는 것입니다. 진주는 팔아서 엄청난 먹을 것을 마련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진주가 동네방네 다 있다고 하면 아무리 진주가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진주는 팔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돼지는 먹을 것만 보입니다. 먹을 것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 보니까 진주는 먹을 것이 아니라고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진주를 받아서 팔아가지고 먹을 것을 살 수 있습니다. 한끝차이입니다. 진리를 볼 수 있는 것은 한끝차이입니다. 

절대적 자존감이라는 것은 자기신뢰입니다. 자기신뢰가 분명하게 있지 않으면 아무리 갖다 줘도 진주를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머시멜론이야기가 있습니다. 머시멜론이 먹고 싶어도 참고 기다린 아이들은 더 큰 일을 하는 성인으로 자라났다고 합니다. ‘당장’을 뛰어넘는 것이 사람은 쉽지 않습니다. 1년을 쉬고서 평생을 살래? 라고 한다면 1년을 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쉴지 모르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면서 내가 쉬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백수의 경제학> 세바시 강연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백수를 꿈꿉니다. 쉬고 싶으니까 쉴 때를 위해서 지금 열심히 일합니다. 그런데 백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강사가 백수 때 잘 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기 신뢰감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2014.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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