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생명의 공동체 2

생명
작성자
yoo eunjoo
작성일
2016-03-17 02:47
조회
962
제가 3천만 원이 필요하다는 자매에게 3천만 원을 준다고 해서 그 자매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끝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최고의 고민이 있습니다. 그 고민이 해결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다른 걱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아이가 아파서 병이 좀 낫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병이 나으면 공부 좀 잘했으면 좋겠고 공부 좀 하는 것 같으면 좋은 대학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좋은 직장 들어가고 좋은 배우자 만나서 결혼하는 것도 봐야 합니다. 끝이 없습니다. 진짜 고민이 무엇인지 그 고민을 해야 하는데 계속 필요와 능력에 집중합니다. 그것은 핵심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핵심가치가 생명의 가치인데 생명의 가치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일도 사랑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제가 가출 전문목사입니다. 그리고 직장 그만두게 하는 전문상담목사이기도 합니다. 가장 좋아하고 가장 사랑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 청년들은 직장 그만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갑니다.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도 갈등도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릅니다. 사랑하는 일, 좋아하는 일, 가치 있는 일을 해야지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생기는 경우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라고 합니다. 아르바이트 하면서 진짜 좋아하는 일을 준비하고 나중에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공동체에서 생명관계를 할 때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그 일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협동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협동조합 자체가 가치운동입니다. 협동조합 일을 하는 것도 사랑하는 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협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일이 교육인데 가장 중요한 교육은 관계교육입니다. 공동체가 제대로 가는지 아닌지는 핵심가치 대로 하는지, 방향이 맞는지를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에 가야 되는데 걸어가든 비행기를 타든 기차를 타든 방향이 맞으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뭘 타고 가든 방향이 다르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기 혼자서 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걸어갈 생각하니까 다리도 튼튼하게 해야 하고 많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냥 비행기 타면 됩니다. 파리가 날갯짓을 몇 만 번 연습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려고 노력할 필요 없습니다. 버스를 타든 기차를 타든 타면 됩니다. 쉽습니다.

우리는 그 자체를 생명의 일이라고 해서 협력해서 같이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핵심가치 속에서 협력해야 합니다. 협력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 정말 다릅니다. 사람이 우주입니다. 우주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입니다. 도대체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 저는 ‘목사님은 이런 분이야.’ 라고 규정화해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싫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목사님은 착한 분이야.’라고 하면 못되게 굽니다. ‘못된 사람이야.’ 라고 하면 착하게 굽니다. 청개구리의 기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만들어 놓은 틀에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틀에 가두는 것 같아서 굉장히 불쾌합니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좋아진 편입니다.

정말 사람 다양하고 다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같이 갈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자르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잘리는 것에 대해서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관계가 깨질 때는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합니다. 문제를 문제로만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문제를 그 사람으로 보고 그 사람 전체인 것처럼 보면 안 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을 못 받아들인다면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돌아올 수 있는 길은 그 해결 방법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본질로 보기 시작하면 비판이 아닌 비난을 하게 됩니다. 비난은 한 문제를 가지고 그 사람 전체를 싸잡아 보는 것입니다.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제가 해 주는 얘기가 있습니다. 진짜 착한 놈 한 사람이 있고 진짜 악한 놈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진짜 착한 사람 없고 진짜 나쁜 사람 없습니다. 그 놈이 그 놈입니다. 1%의 선과 1%의 악이 전체인 것처럼 보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양면성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한테 너무 따뜻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저한테 너무 차가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 저한테 걸어 다니는 천사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술기운에 하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가끔 전화해서 제가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반면에 진짜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정말 건방지고 무례하다고 하는 목사님도 있습니다. 양 극단의 평가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한테는 좋은 사람인데 다른 사람한테는 정말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능하면 관계는 자르지 말고 해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반드시 나에게 맡겨진 생명이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고 데리고 있어야지만 책임자의 마음이 있는 것이고 그래서 그 사람을 통해서 내 마음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나는 아직 어리더라도 어린 것 만큼의 맡겨진 사람이 있습니다. 생명관계를 독립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 칭얼대는 의존의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담임목사가 되기 전까지는 담임목사들이 다 불의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담임자가 되고나니까 그 분들 대부분이 좋은 분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 가보니까 알게 된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데리고 있어봐야지 실질적으로 생명의 공동체 안에서, 질서 안에서 살아낼 수 있습니다. 내게 맡겨진 생명 때문에 립스틱 짙게 바르고 화장을 고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예쁜 것입니다. 엄마는 꾸미지 않아도 여자 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저희 교회 애기엄마가 머리에 핀 하나 꽂고 화장도 안 하고 아기를 안고 왔는데 그 인생에서 가장 예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생명에 관심이 없으면 누가 째려봤네 어쩌네 하면서 엉뚱한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내가 생명을 키워 봐야지만 생명의 공동체 안의 또 다른 메카니즘을 알게 됩니다. 반드시 누군가를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 공동체가 만들어집니다.

2016.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