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생명관계 2

생명
작성자
yoo eunjoo
작성일
2016-03-17 02:49
조회
1005
제가 영어라고는 양키고홈만 알고 미국에 갔습니다. 양키네 집에 간 것입니다. 제가 가장 싫어했던 나라에 가서 영어를 하려고 하니까 될 리가 없습니다. 제 아내는 4년 내내 영어로 수업을 받았습니다. 영어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가서 2년 동안은 아침부터 저녁 5시까지 영어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것만 몇 천만 원의 수업료를 지출했습니다. 원래 석사가 있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 바로 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코스가 있어서 거기에서 그냥 박사 받으면 되는 것이었는데 제 아내가 절대 안 된다고 영어로 공부하고 가야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제가 영어를 잘 하게 된 것도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은 1년 정도 되면 귀가 뚫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3년이 걸렸습니다. 모국어는 엄마의 말입니다. 엄마의 말은 내가 들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말이기 때문에 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제2외국어를 배우게 되면 언어에도 언어의 비교우위가 있습니다. 남미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온 아이들은 스페니쉬도 하고 포루쿠칼어도 하면서 한국어도 합니다. 남미 2세들은 한국말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온 한국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온 아이인데도 한국말을 잃어버리고 영어를 합니다. 왜냐하면 한국하고 이민 간 나라를 비교해서 미국이 더 낫다고 생각하면 영어를 배우고 한국어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브라질 같은 남미의 나라들은 한국이 자기네 나라 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지킨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언어의 비교우위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늘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들어도 하지 못 합니다. 왜냐하면 매일 땅의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배우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유학 간 첫 해에 1년 연수를 온 여자아이를 만났는데 열심히 배우려고 애쓰느라 한국 사람을 만나도 영어를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옆에서 한국말을 했습니다. 저는 한국이 우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는 영어가 쓰여진 티셔츠는 입지도 않고 커피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커피 마시는 것이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석유가 한 방울도 안 나오는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자동차를 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옷가게에 가서 영어로 된 티셔츠는 안사겠다고 하니까 주인아저씨가 저한테 국문과학생이냐고 물어봤던 적도 있습니다. 거의 전사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갔다고 미국말이 배우고 싶었을 리 없습니다. 영어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영어가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8년 정도 사니까 알아듣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미국 사람들한테 초대 받아서 일반 가정집에 갔는데 다 미국 사람이고 제 아내는 영어 전공을 했고 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 틈에 제가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저 혼자서 떠들었습니다. 못 알아듣는 것은 그 사람 문제지 나는 말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자기 언어를 잃어버리지 않는 민족이 있습니다. 자기네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중국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종교를 잃어버리지 않는데 어느 나라 가든 그 나라 언어는 배웁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자기네 언어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시험을 보는데 영어를 공부해야 하고 대학원시험을 보는 데도 영어시험을 봐야 하는 것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를 51번째 주로 만들고 싶은 것 같습니다.

요즘 아줌마들이 모이면 다 평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평수와 등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매일 평수가 어떻고 등수가 어떻게 얘기하다보니까 다 비교하고 경쟁하면서 죽이는 말만 합니다. 적은 평수 사는 사람 죽이고 등수 낮은 아이의 부모를 죽입니다. 그러면서 하늘의 소리를 들어도 말을 못 합니다. 왜냐하면 그 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하늘의 말을 한다는 것, 생명의 말을 한다는 것이 관계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내용은 똑같은데 다릅니다. 살리는 말입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말하는데도 다 자기를 위하는 말, 죽이는 말만 합니다. 살리는 말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한 말입니다. 물론 하늘의 소리를 듣고 나를 살리는 말도 있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욕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살리는 말이 관계의 말인데 내가 사는 말이 아닙니다.

귀로 듣는 것은 대부분이 과거이고 눈으로 보는 것은 미래적인 것이고 입으로 말하는 것은 현재입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불신의 소리를 듣고 삽니다. 상처에 대해서 원수에 대해서 듣고 사는데 믿음의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는 늘 불안합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바뀔까?’,‘저 상황이 어떻게 바뀔까?’ 불안한데 영원한 것,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을 보면 소망이 있습니다. 현재는 그래서 내가 늘 불안한 말이 아니라 불만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말이 아니라 사랑의 말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너를 볼 때 나와 너의 관계로 보면 안 됩니다. 늘 나와 너만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똑같이 내가 가지고 있는 원복이 있고 하늘의 소리가 있고 나의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을 볼 때 원복, 하늘의 소리, 목적을 통해서 봐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매일 그 사람 때문에 좋을 때는 좋고 싫을 때는 싫습니다. 원복, 하늘의 소리, 목적이 안경입니다. 파란 색 안경을 끼면 모든 세상이 다 파란 색이 됩니다. 그런데 안경을 끼지 않은 상태에서 보기 시작하면 상대가 어떤 때는 파란 색으로 어떤 때는 녹색으로 변합니다. 안경 끼고 봐야 합니다.

사람을 당연히 신뢰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람을 신뢰합니다. 사람을 그대로 보면 그 사람이 왔다 갔다 하니까 신뢰를 못 합니다. 그런데 원복이라고 하는 가치로 보기 시작하니까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신뢰할 것이라고 내가 믿습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내가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편한테 매 맞는 여자가 있으면 옛날에는 맷집을 키우라고 얘기했습니다. 참고 살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때리면 신고해야 합니다. 아니면 바로 센타에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나에게 원복이라고 또는 하늘의 소리 속에서 가치로 저 사람이 내 남편이라고 인정해주면 그 관계는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는 끊지 않지만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그것이 사이좋게 싸우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는 존재이고 그냥 사랑해야할 존재라고 했는데 저는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신뢰하지 않고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100만 원을 주면 나는 그 사람이 준 100만 원에 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100만 원어치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는 사람도 하나님한테 준다고 생각하고 받는 사람도 하나님한테 받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100만 원이 준 사람에게 매이는 돈이 아니라 하늘의 가치를 두고서 하늘의 일을 할 수 있는 돈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물질을 받고 물질을 흘려보내는 것도 원리가 있고 그 원리 안에서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자기 욕심대로 쓸 수밖에 없습니다.

헨리나우웬이라고 하는 20세기 유명한 영성가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영적 발돋움>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사람이 귀와 눈과 입을 가지고 어떻게 생명관계를 하고 살 것인지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가라고 합니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준 상황이고 고독은 자기 스스로 그 상황을 선택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니까 중독에 빠집니다. 그런데 고독으로 들어가면 외로움에서 벗어나서 진짜 자유를 만나고 진짜 자유한 소리를 듣게 됩니다. 고독의 자리에서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미세하고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들으려면 고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혼자 있으면 외롭다고 합니다. 결혼을 해도 외롭고 아이가 있어도 외롭습니다. 다 가졌다고 생각하는 인생도 외롭습니다. 명지대 김정운교수가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책을 썼습니다. 저는 그것을 고독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끊어버리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로부터 남편으로부터 떨어져서 그 속에서 진자 소리, 원음을 들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두려움에서 환대로 가야합니다.
환대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나를 칠까봐 나를 나쁘게 평가할까 봐 두렵습니다. 배신할까 봐 신뢰를 못합니다. 배신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배신합니다. 배신과 배반의 차이가 있습니다. 배신은 약해서 하는 것이고 배반은 강해서 하는 것입니다. 배신은 내가 뭘 하고 싶지만 이기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그것을,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깨는 것이 배신입니다. 그런데 내가 뭔가 이루기 위해서 내가 맞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을 치는 것이 배반입니다. 배신과 배반이라고 하는 두려움에서 누구든지 환대하는 것으로 가야합니다. 환대가 나그네를 내 집의 주인처럼 대접해 주는 것입니다. 입장이 다 다르지만 환대해 줘야 합니다. 싸울 것은 싸우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얘기하는데 기본적인 태도는 환대여야 합니다. 저 놈이 배신할 것 같고 배반할 것 같이 보이는 것이 있어도 각오하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환대하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안 그러면 관계는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끊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망상에서 기도로 가야합니다.
기도는 고독의 자리에서 나를 보고 관계 안에서 환대하면서 결국에는 일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망상과 기도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고개 숙이고 손 모으지 않으면 맞았습니다. 사실은 기도는 눈 뜨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실재입니다. 사람들이 망상이라는 자기 스스로 만든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서 삽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망상이 있습니다. 교인들의 망상은 좋은 말씀 들었으니까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실재는 진짜 힘든 것입니다. 제가 매일 강의를 하는데 그 강의대로 살지 않으면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다 가짜입니다. 가짜가 망상입니다. 가짜를 진짜로 생각하고 사는 것도 망상입니다. 실재로 기도는 피 흘리는 것입니다. 힘들지만 어렵지만 살아내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부산에 가려면 수원으로 가든 대전으로 가든 방향이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부산 간다고 하면서 속초를 향해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방향으로 살아내는 실재가 또 있어야 합니다. 걸어가든 버스를 타든 기차를 타든 실재로 해 내지 않으면 다 가짜입니다. 관계 안에서도 똑같습니다. 그 관계로 살아내는 것이 내가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고 입이 열리는 것입니다. 고독과 환대와 기도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관계의 시작입니다. 망상이 깨지려면 자꾸 드러내고 물어봐야 합니다.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2016.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