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말씀 1. 2

말씀
작성자
yoo eunjoo
작성일
2016-03-17 02:51
조회
974
거울, 자기를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자신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은 기독교적인 용어로 말씀입니다. 말씀 자체가 거울입니다. 여의도에 있는 직장에 다니는 저희교회 청년이 있는데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저한테 직장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얼마나 힘든지 모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많이 해 보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질은 누구  보다도 잘 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알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인생의 기준이 다 들어있습니다.

기독교를 말씀종교라고 하는 이유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오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한 학자가 알라와 여호와와 기독교의 신이 같은 신이라고 말해서 발칵 뒤집혔는데 아무튼 신은 보이지 않는 영입니다. 신이라고 하는 존재가 말씀으로 온다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말씀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이라고 하는 쓴 말씀, 글로 된 말씀이 있는데 글로 된 말씀이 전부가 아닙니다. 쓰지 않은 말씀도 있고 나타난 말씀도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눈으로 보게 나타난 것입니다. 말씀이라는 것 자체가 보이지 않는데 그 말씀 자체가 사람들한테 보일 때는 사랑으로 보입니다. 사랑이라는 존재, 사랑이라는 그 자체로 보입니다.

제 아내가 요즘 에니어그램 전문가과정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은혜 받은 얘기하고 열 받은 얘기를 저한테 했습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준다는 표현을 하는데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냥 사랑이라고 해서 은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제가 성경에 나오는 얘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열 받았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만 하면 다 성경에 나온다고 해서 화가 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오는데 그 말씀이 사랑이라는 실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진바 되는 진짜로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랑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이지만 사랑이 하나님은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존재의 권위 보다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더 큰 그 존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진바 되는 실재로 온다고 할 때는 사랑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라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사랑으로 경험되어지고 실제로 그렇게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 나타난 말씀이라고 하는데 나타난 말씀이 와서 우리에게 준 실재가 사랑의 관계입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1의 존재와 또 다른 사랑의 2의 존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 3의 주체라고 합니다. 제가 교회 안에서 3자 대면을 많이 해봤습니다. 이 말 때문에 삐졌다고 하고 저 말 때문에 삐졌다고 하니까 그럼 다 같이 모여서 진짜가 무엇인지 확인 해보자고 3자 대면을 했는데 결론은 항상 없습니다. 내가 그런 뉘앙스로 들은 것이고 자기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얘기해서 3자 대면은 하면 할수록 힘만 듭니다. A라는 사람이 B한테 얘기를 했습니다. 그 얘기를 B가 C한테 A가 뭐라고 했다더라 하면서 얘기할 때 저는 C에게 A한테 가서 직접 물어보라고 말합니다. 전해서 들은 얘기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다릅니다. 왜냐하면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듣고 있는 B의 또 다른 해석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하고 아하고 다릅니다. 한끝 차이인데 한끝 차이로 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C가 A의 생각을 B의 관점에서 본다고 생각하면 맞습니다. 그래서 A한테 가서 반드시 다시 물어봐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부분 안 물어봅니다. 예전에는 우리 교인들은 가서 물어보느라 바빴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합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3년 정도 됐을 때는 피터지게 싸우다가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살고 있습니다. 아무튼 예수라고 하는 존재는 사랑의 관계 안에서 오는 존재입니다. 종교적인 개념이 아니라 관계의 개념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령하나님이 있습니다. 똑같이 말씀인데 이 분은 사랑의 섬김으로 옵니다. 관계 안에서 섬김의 관계로 옵니다. 조직의 원리에서는 힘 있는 사람이 군림해서 섬김을 받습니다. 그래서 약한 자가 섬깁니다. 그런데 생명의 원리에서는 힘센 사람이 연약한 자를 섬깁니다. 그것이 엄마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섬깁니다. 생명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조직관계와 생명관계가 다른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한테 주고 싶은 최고의 말 중에 하나가 ‘생명관계’라는 말입니다. 생명관계는 가장 힘센 사람이 가장 많은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깁니다. 사람이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한다는 말의 의미가 자연하고도 생명관계를 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생명다워지게 하는 관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하나님의 말씀이 우리한테 오면 그것이 섬김으로 만들어지는 내 성향이 내 본질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사랑의 관계와 사랑의 섬김이라고 하는 이 세 가지 요소를 한계상황에서 말씀이 다시 나에게 기억나게 합니다. 말이라는 것이 나에게 들리기 시작하면 사랑과 사랑의 관계와 사랑의 섬김이라는 내 체질대로 내 근원대로 다시 살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두 가지의 결과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사랑과 사랑의 관계와 사랑의 섬김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내 성품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말씀을 듣고 다시 살아나서 그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예수의 말씀, 성령의 말씀이라고 하는 이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옵니다. 그 말씀으로 마음을 닦는 또는 마음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지키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결국 마음의 문제인데 내 마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를 생각하면서 좋은 마음을 가져야지, 착한 마음을 가져야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마음을 지키는 종교입니다.

마음이든 정신이든 내 본질이든 그 안에 말씀이 들어오면 그 말씀 자체를 가지고 마음을 지키면 말씀이 마중물이 됩니다. 시골에서 펌프질해서 지하수를 사용해 봤는데 땅 속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물이 있이도 그 물을 길어 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물 한바가지를 붓고서 펌프질을 하면 마중물이 지하수와 만나는 순간 터져 올라옵니다. 내 본질이 있는데 그 본질이 노력해도 수련을 해도 나타나질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 안에 어떤 것을 집어넣으면 그것이 마중물이 되어서 나의 원래 마음이, 원래 생각이, 본질이 그대로 나옵니다. 마중물의 역할을 하는 것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격언이나 속담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격언이나 속담은 인류가 살아가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압축되고 압축되어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해서 힘들 때 그 소리가 들리니까 ‘그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지? 내가 여기서 최선을 다해 살면 되는 거야. 그러면 언젠가 하늘이라는 존재가 나를 다시 일으킬 거야.’ 라고 생각하고 일어납니다. 이것이 인류에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압축된 단어들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하는데 나도 모르게 들은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들려지는 그 말이 나를 구렁텅이에서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로 마음을 지키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말씀 자체가 운동력이 있고 생명력이 있어서 말씀으로 내 마음을 지키고 있으면 그 자체가 사랑과 사랑의 관계와 사랑의 섬김의 속성을 만들어서 내가 변화되게 하고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별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자연이라고 얘기하고 어떤 사람이 갑자기 말씀을 듣고서 성품이 변하고 공동체가 세워지는 것을 기적이라고 얘기합니다. 원래 기적이 아니라 자연입니다. 안 바뀌는 것이 기적입니다. 백조가 원래 백조로 사는 것이 맞는 것이고 백조가 오리처럼 사는 것이 기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백조가 오리처럼 사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니까 그것이 자연이라고 생각하고 어느 날 이상한 애가 백조가 되어서 날아가는 것을 기적이라고 얘기합니다.

기적과 자연의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물 위를 걸어가는데 한 사람이 빠져 죽었다면 빠져 죽은 것이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빠져 죽으면 그것이 자연이고 한 사람이 물 위를 걸어간다면 물 위를 걷는다면 그것이 기적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 자연이 맞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매일 기적을 바랍니다. 기적이 계속 일어나면 그것이 자연입니다. 우리가 숨 쉬고 사는 것이 원래 기적인데 너무나 자연스러우니까 기적인지 모르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세 잎 클로버의 의미가 ‘행복’이고 네 잎 클로버의 의미가 ‘행운’ 인데 사람들은 행복을 밟고 행운만 찾아다니며 산다고 합니다. 원래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로또에 당첨되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 별로 없다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로또복권을 반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