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말씀 1. 3

말씀
작성자
yoo eunjoo
작성일
2016-03-17 02:51
조회
1034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사랑의 속성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랑의 속성은 내 문제에 대해 정직하게 합니다. 내가 사랑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정직해집니다. 정직하다는 것이 솔직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찌질하면 찌질하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찌질한데 자꾸 가면을 쓰기 시작하면 거짓을 말하게 되고 나중에는 망상까지 갑니다. 거짓에 대해 스스로 맞다고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맞다고 결정하고 사는 것입니다.

정직은 자기의 연약함 자기의 부족함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도교회 어떤 집사님하고 같이 일을 하게 됐는데 나이를 물어보기가 좀 그래서 몇 학번이시냐고 여쭤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저는 고등학교만 졸업했습니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그 분이 참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자꾸 신이 되려고 하는 것은 완벽주의 때문입니다. 일을 하는 데도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완벽주의가 사실은 완벽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난지도에 살면서 자꾸 샤워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난지도 인생입니다. 뭔가 묻을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제가 교주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제가 저의 약함을 너무나 잘 알고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제 흉을 보거나 욕을 해도 그냥 동조합니다. 말하는 사람 보다 오히려 더 재미있어하니까 제 아내는 그런 면을 싫어합니다. 그러면서 변하지 않으려고 하는 또 다른 교만이라고 얘기합니다. 아무튼 정직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직해야지, 정직해야지, 한다고 해서 정직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이 사랑의 속성입니다. 사랑이 오면 나도 모르게 해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한 이유는 자기의 약점을 보여주는 순간에 공격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특히 절대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통령 얘기하고 국회의원 얘기를 합니다. 객관화시키는 얘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친해지면 비밀을 공유한다고 들었습니다. 남자들은 절대로 비밀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들어가면 정직해집니다.

제 처가 사람들이 다 성악가들이고 제 아내도 노래를 참 잘 합니다. 그런데 제가 음치입니다. 목사로써는 최악의 조건입니다. 저는 도레미파솔라시도가 가장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랑에 눈이 머니까 연애할 때는 제가 한 시간씩 노래를 불러줘도 듣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은 제가 노래를 하면 바로 조용히 하라고 합니다. 정신 차린 것입니다. 사랑의 호르몬이 사라진 것입니다. 사랑의 속성이 정직인데 정직이 가끔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사랑의 속성은 부드러움입니다.
사랑하면 부드러워집니다. 거꾸로 사랑이 없으면 강팍해집니다. 사람이 세지고 기준이 높아지고 강팍함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강의를 하고 설교를 해 보면 사람들이 제 얘기를 듣고 있는지 듣고 있지 않은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강팍하다는 것은 마음이 딱딱하고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할 때 지혜를 주신다고 했는데 그 지혜가 마음이 열리는 것입니다. open mind입니다.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빈 마음이고 하나는 열린 마음입니다. 열린 마음이 사랑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고 수용합니다.

정직하고 부드러워지기 위해서는 세 번째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미움 받을 용기입니다. 용기가 없으면 회피합니다. 회피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현실을 직면하기 싫어하고 자기 모습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싫어하고 구질구질한 것이 싫습니다. 그래서 가면을 쓰고, 가면을 쓰고, 가면을 써서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만 모르지 다른 사람들은 다 압니다. 누가 가면을 많이 쓰고 있는지 누가 착한 아이인지 다 압니다. 가면 뒤에 숨어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사랑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들어오면 용기가 생깁니다. 성품이 달라지고 공동체 안에서 버티고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통과하는 사람입니다. 성품이 변하고 공동체 안에서 버티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그것이 돌 같이 단단하고 반석 같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용기 있게 뚫고 지나갈 수 있는 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딪치는 돌에 넘어지고 거치는 반석에 머물러 있습니다.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라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자화상입니다. 상처입니다. 상처가 많은 것도 아니고 단 한 가지입니다. 사람들이 다 한 가지 문제에 걸려있습니다. 한 가지 문제에 걸려있기 때문에 부딪치는 돌이 어마어마하게 큰 돌처럼 보입니다. 내 눈썹에 밥풀이 붙어있으면 인생이 다 바윗덩이처럼 보입니다. 밥풀은 그냥 떼어서 먹으면 됩니다. 자기 문제가 제일 커 보이는 것입니다.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라고 하는 것을 통과하지 못하면 죽을 것 같은데 사실은 한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뚫고 지나가려고 하는 것이 용기입니다. 부딪치는 돌이 장애물이 아니라 디딤돌입니다. 걸려서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밟고 지나가야하는 것입니다. 반석은 나를 든든하게 세워줄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반석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 한 가지를 사랑의 속성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사랑이 내 마음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사랑이 생명의 근원이고 나에게 생명력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들어와서 사랑의 관계와 섬김을 할 때 내가 온전해지고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답부터 얘기하면 잘 들어야 합니다. 듣는 귀가 열려야 하고 들을 때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내가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 이 원리를 모르다보니까 계속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자기를 믿고 있습니다. 말에도 자기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원음을 들어야 합니다. 지방방송을 들으면 안 됩니다. 1차 관계, 2차 관계, 3차 관계가 있습니다. 약간 우울증이 있는 집사님이 있는데 매일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모른다고 말해주고 얼굴 안 고쳐도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친구가 얼굴 조금만 고치면 정말 괜찮겠다고 말했다고 바로 예약을 했습니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얼굴을 고치게 되면 계속 반복할 가망성이 큰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제발 엑스트라의 말을 듣지 말라고 했습니다. 지나가는 엑스트라 1의 소리를 듣지 말고 주인공의 얘기를 들어야 합니다.

가뭄에는 물이 말라서 마실 수가 없고 홍수가 나면 깨끗한 물이 없어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는 뿌리를 깊이 내려서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웬만한 가뭄에도 웬만한 홍수에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요동친다는 뜻은 내가 얕다는 것입니다. 요동치지 않는 수준까지 간다는 것이, 도를 깊이 닦는다는 말이 기독교적으로 보면 말씀을 깊이 묵상한다는 뜻이고 마음에 깊이 새겨서 마음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듣고 행하고 지키는 것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도를 닦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계속 하고 싶은 것입니다. 마음을 수련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공부 끝입니다. 마음을 지키고 있으면 됩니다. 종교적으로 얘기하면 기독교의 말씀이지만 일반적으로 얘기하면 내 인생의 좌우명이나 격언이나 속담이나 나를 살리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아이들한테도 격언이나 속담을 많이 들려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인생 살다가 넘어졌을 때 그 말 때문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인이 아닌데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는 예수도 안 믿고 하나님도 안 믿는데 그냥 교회 사람들이 식구 같다고 합니다. 와서 점심 먹고 설거지 합니다. 예배시간에 본당에는 잘 올라오지도 않습니다. 왜 안 올라오느냐고 물어보면 제 설교가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합니다. 자꾸 하나님 얘기를 하는 것이 싫다고 합니다. 저 보고 ‘하나님’ 빼고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결혼할 때 목사님이신 장인어른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장인어른이 뭔가 오해가 있으셔서 저희교회를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또 자기는 반드시 하나교회에 갈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참 특이한 사람입니다.

그 친구가 수요일에 성경공부 하러 왔는데 자기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자기를 자기답게 만들어준 말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그 말씀이 누군가 나에게 쉼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해서 그 말 때문에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안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흙에 생령이라고 하는 살아있는 영을 불어넣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아담이라는 사람이 됐습니다. 사람은 흙을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영의 양식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영의 양식이 지금 듣는 인문학 강의나 가치, 신비의 세계입니다. 밥 먹듯이 영의 얘기를 듣지 않으면 사람은 죽습니다. 가치의 말을 듣지 않고 존재의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죽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흙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최고의 전문가가 되면 영적인 것, 가치를 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자가 돈을 많이 벌면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옛날에 이병철씨가 사람을 뽑을 때 관상 보는 사람이 옆에 앉아있었습니다.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영적인 문제에서 걸리면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우면동에 가면 큰 점집이 있습니다. 그 집에 정치가들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권력을 거머쥔 사람이 결국 추구하는 것이 또 다른 신비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만 모릅니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만 모릅니다. 우리는 영적인 가치를 듣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목적이 분명해져야 시간의 우선순위가 생깁니다. 목적이 없으면 우선순위의 시간의 개념이 없어집니다. 어떤 것을 먼저 해야 될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몸이 가는대로 습관대로 힘센 사람에 의해서 자기 시간을 소비하고 삽니다.

‘아, 나 백조구나.’ 여기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날아가야 합니다. 날아가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에 상도동에서 아줌마로 태어나게 하신 뜻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찾지 않으니까 ‘저기에 뭐 있대.’ 하면 우르르 몰려가고 엑스트라 얘기 듣습니다. 엑스트라가 누구인지는 목적이 정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누구의 말이든 가능하면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지만 기독교는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목적에 맞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자기가 살아야 될 이유, 의미를 들어야 합니다. 종교의 사회학적 역할이 사회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내가 왜 살아야 되는지, 뭘 하고 살아야 되는지, 삶의 분명한 목적이 생기면 나머지는 갈라집니다. 그래서 오산에서도 기꺼이 상도동까지 옵니다. 돈 되는 일도 아니고 오히려 돈 내면서 혼나는 곳이 교회입니다. 시간적으로도 너무 아까운 시간입니다. 그런데 목적이 분명해지니까 그 시간이 아깝지 않습니다. 왜 사느냐고 물으면 할 얘기가 있어야지 죽지 못해 산다고 하면 안 됩니다. 허공에 주먹질 하고 살면 안 됩니다. 푯대를 향해서 가야 합니다.

저는 서울에 스무 개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비젼입니다. 전주에 있는 200명 교인이 있는 교회에서 오라고 했는데 안 갔습니다. 제가 갈지자로 가고 허공에 주먹질 하고 성공이 목적이라면 가야 맞습니다. 그런데 제 목적은 전주가 아닙니다.

운동권이었던 제 동기들이나 선배들은 다 농촌에 가서 농촌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당연히 농촌목회를 해야겠다고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제가 농촌교회에 가게 된다면 아마도 매일 읍내에 가서 놀았을 것 같다고 얘기합니다. 완전 시골인 워싱턴D.C에서 일주일 있다가 뉴욕에 갔는데 신이 났습니다. 구로동에서 살아서 그런지 매연이 익숙하고 좋았습니다. 그 때 제가 도시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엑스트라가 서울에 뭔가를 하자고 한다면 하는 것입니다. 제 꿈이 서울이기 때문입니다. 베이스캠프가 될 하나교회가 아직 자리를 못 잡아서 요즘은 20개의 교회가 꼭 나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합리화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만으로 족해야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